복지뉴스 HOME 커뮤니티 복지뉴스 공지사항 보도자료 한밭영상 캘린더 복지뉴스 백일장 전시회 복지뉴스 중증장애인의 의료권과 자기결정권, 그리고 ‘연립의 자립’ 임성준(한밭센터) 뎃글수 0 조회수 6 작성일자 2026.08.10 중증장애인의 의료권과 자기결정권, 그리고 ‘연립의 자립’ 기자명칼럼니스트 김경식 입력 2026.08.07 17:23 댓글 0 다른 공유 찾기 전자점자 다운로드 바로가기 본문 글씨 키우기 본문 글씨 줄이기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2026년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본격적인 제도 단계에 들어섰다. 병원과 시설이 아니라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을 이어가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는 분명 진전이다. 다만 ‘전국 시행’이라는 표현과 달리 장애인 통합돌봄은 시행 초기 102개 기초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작됐고, 65세 미만은 의료 필요도가 높은 장애 정도가 심한 지체·뇌병변장애인 등이 우선 대상이다. 제도의 문은 열렸지만 누구에게, 어디까지 열렸는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서비스가 하나로 연결됐다고 해서 당사자의 삶까지 저절로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통합돌봄의 진짜 질문은 의료·복지·주거 서비스를 몇 건 연계했는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삶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지원 목표를 누가 정하고, 서비스를 누가 선택하며,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누가 결정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당사자가 아니라 행정기관·전문가·가족이라면, 통합돌봄은 공급자 중심의 ‘통합 관리’에 머물 수 있다. 통합돌봄이 권한의 이동을 만들어 낼 때 ‘연립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의료를 많이 이용해도 의료권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국립재활원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2022년 등록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약 5.2%였지만 총진료비는 약 18조 4,549억 원으로 국민 전체 진료비의 15.9%를 차지했다. 그러나 높은 의료이용은 의료권 보장의 증거라기보다 높은 질병 부담과 건강 취약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 중증장애인은 필요한 진료가 있어도 병원까지 갈 이동수단이 없거나, 휠체어에서 검사장비로 옮겨갈 수 없거나, 장애 특성을 이해하는 의료진을 만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의사소통 지원이 없고 진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의료기관의 문이 열려 있어도 실질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합돌봄에서 의료권은 ‘의료서비스가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필요한 때에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충분하고 적절하게, 생활공간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방문진료와 재택의료, 방문간호와 재활은 편의 서비스가 아니다. 병원 방문 자체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의료접근권을 현실로 만드는 핵심 수단이다. 여기에 활동지원, 이동지원, 보조기기와 접근 가능한 주거환경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의료는 다시 병원 문턱 앞에서 끊긴다. 환자로만 규정되지 않을 권리 의료 지원의 확대가 장애인의 삶 전체를 진단명과 기능저하로만 바라보는 ‘의료화’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모든 질병이 치료되는 것도, 모든 장애가 재활을 통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회복과 기능향상만을 정책의 최종 목표로 삼으면 회복되지 않는 몸은 개인의 실패처럼 취급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플 권리’ 또는 ‘질병권’은 현행법에 독립된 권리로 명시돼 있다는 뜻이 아니다. 질병이나 장애가 지속되더라도 존엄한 생활, 사회참여와 자기결정이 보장돼야 한다는 규범적 요구다. 중증장애인은 환자일 수 있지만 환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의 구성원이고 이웃이며, 노동자·소비자·동료이자 시민이다. 의료권은 치료받을 권리와 함께, 치료의 성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 ‘살던 곳’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곳’이다 통합돌봄은 ‘살던 곳에서의 생활’을 강조한다. 그러나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집이 권리를 보장하는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휠체어로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고,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며, 가족이 없으면 식사와 외출이 불가능한 집이라면 그곳에 계속 머무는 것은 지역사회생활이 아니라 고립의 지속일 수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의 핵심은 단지 시설 밖에 사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선택하고, 특정한 주거형태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에 있다. 그래서 정책의 기준도 ‘살던 곳’에서 ‘선택한 곳’으로 확장돼야 한다. 지금 집에 계속 사는지보다 그곳을 실제로 선택했는지, 다른 주거 대안이 있는지, 선택한 장소에서 필요한 의료와 활동지원·야간지원·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가족 역시 부족한 공적 서비스의 무급 대체인력으로 전제돼서는 안 된다. 병원이나 시설이 맡던 지원을 가족에게 넘긴다면 지역사회 전환은 돌봄책임의 사회화가 아니라 장소의 이전에 불과하다. 가족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가족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 혼자 하는 자립에서, 관계를 선택하는 ‘연립의 자립’으로 자립은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능력이 아니다. 식사·이동·배변·의사소통에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활동지원인과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 지원의 목적과 시간·방법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 반대로 많은 일을 혼자 수행하더라도 거주지와 서비스, 하루의 일정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면 실질적인 자립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러한 자립을 ‘연립(聯立)의 자립’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장애학에서 확립된 기존 용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자립생활운동의 선택과 통제, 돌봄윤리의 관계성, 관계적 자율성의 논의를 중증장애인의 삶에서 다시 묶어 보기 위한 제안이다. 연립은 단순히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관계가 평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가족이나 활동지원인에게 생존을 의존하면서도 서비스를 거부하거나 제공자를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은 상호의존이 아니라 강요된 의존에 가깝다. 연립의 조건은 필요한 지원을 선택·조정·변경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관계를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있으며, 지원을 받으면서도 삶의 최종 결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립의 목표는 의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강요된 의존을 선택 가능한 관계로 바꾸는 데 있어야 한다. 이때 보완대체의사소통(AAC), 쉬운 정보, 접근 가능한 디지털 정보, 의사소통 조력과 충분한 숙고시간은 부가 서비스가 아니다. 말이나 문자로 빠르게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당사자가 서비스 계획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자기결정권의 기반이다. 휠체어와 자세유지기기, 환경제어장치 같은 보조기기 역시 단순한 물품이 아니라 의료권·이동권·의사소통권과 사회참여권을 연결하는 권리 인프라다. 통합돌봄의 성패는 ‘권한의 이동’으로 측정해야 한다 통합돌봄의 성과지표도 달라져야 한다. 연계기관 수, 서비스 제공 건수, 입원 감소와 일상생활동작 향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사자가 제공자를 바꿀 수 있는지, 가족 외의 지원을 선택할 수 있는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지, 의사소통 지원을 받아 계획에 영향을 미쳤는지, 자신의 정보가 누구에게 어떻게 공유되는지 통제할 수 있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사회참여의 확대와 삶의 만족도도 핵심 지표가 돼야 한다. 통합돼야 하는 것은 서비스이지 당사자의 삶에 대한 통제권이 아니다. 제도의 성패는 기관 사이의 연결이 촘촘해졌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와 지방정부, 의료기관과 복지기관, 전문가와 가족에게 집중돼 있던 결정 권한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이동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잘 돌봐주는 제도’가 아니다. 충분한 의료와 돌봄을 안정적으로 지원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필요한 관계를 구성하며, 원하지 않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다. 통합돌봄이 그러한 권한의 이동을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의존하면서도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지 않는 ‘연립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이전 다음 목록
중증장애인의 의료권과 자기결정권, 그리고 ‘연립의 자립’ 임성준(한밭센터) 뎃글수 0 조회수 6 작성일자 2026.08.10 중증장애인의 의료권과 자기결정권, 그리고 ‘연립의 자립’ 기자명칼럼니스트 김경식 입력 2026.08.07 17:23 댓글 0 다른 공유 찾기 전자점자 다운로드 바로가기 본문 글씨 키우기 본문 글씨 줄이기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2026년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본격적인 제도 단계에 들어섰다. 병원과 시설이 아니라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을 이어가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는 분명 진전이다. 다만 ‘전국 시행’이라는 표현과 달리 장애인 통합돌봄은 시행 초기 102개 기초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작됐고, 65세 미만은 의료 필요도가 높은 장애 정도가 심한 지체·뇌병변장애인 등이 우선 대상이다. 제도의 문은 열렸지만 누구에게, 어디까지 열렸는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서비스가 하나로 연결됐다고 해서 당사자의 삶까지 저절로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통합돌봄의 진짜 질문은 의료·복지·주거 서비스를 몇 건 연계했는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삶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지원 목표를 누가 정하고, 서비스를 누가 선택하며,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누가 결정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당사자가 아니라 행정기관·전문가·가족이라면, 통합돌봄은 공급자 중심의 ‘통합 관리’에 머물 수 있다. 통합돌봄이 권한의 이동을 만들어 낼 때 ‘연립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의료를 많이 이용해도 의료권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국립재활원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2022년 등록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약 5.2%였지만 총진료비는 약 18조 4,549억 원으로 국민 전체 진료비의 15.9%를 차지했다. 그러나 높은 의료이용은 의료권 보장의 증거라기보다 높은 질병 부담과 건강 취약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 중증장애인은 필요한 진료가 있어도 병원까지 갈 이동수단이 없거나, 휠체어에서 검사장비로 옮겨갈 수 없거나, 장애 특성을 이해하는 의료진을 만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의사소통 지원이 없고 진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의료기관의 문이 열려 있어도 실질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합돌봄에서 의료권은 ‘의료서비스가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필요한 때에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충분하고 적절하게, 생활공간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방문진료와 재택의료, 방문간호와 재활은 편의 서비스가 아니다. 병원 방문 자체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의료접근권을 현실로 만드는 핵심 수단이다. 여기에 활동지원, 이동지원, 보조기기와 접근 가능한 주거환경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의료는 다시 병원 문턱 앞에서 끊긴다. 환자로만 규정되지 않을 권리 의료 지원의 확대가 장애인의 삶 전체를 진단명과 기능저하로만 바라보는 ‘의료화’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모든 질병이 치료되는 것도, 모든 장애가 재활을 통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회복과 기능향상만을 정책의 최종 목표로 삼으면 회복되지 않는 몸은 개인의 실패처럼 취급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플 권리’ 또는 ‘질병권’은 현행법에 독립된 권리로 명시돼 있다는 뜻이 아니다. 질병이나 장애가 지속되더라도 존엄한 생활, 사회참여와 자기결정이 보장돼야 한다는 규범적 요구다. 중증장애인은 환자일 수 있지만 환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의 구성원이고 이웃이며, 노동자·소비자·동료이자 시민이다. 의료권은 치료받을 권리와 함께, 치료의 성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 ‘살던 곳’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곳’이다 통합돌봄은 ‘살던 곳에서의 생활’을 강조한다. 그러나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집이 권리를 보장하는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휠체어로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고,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며, 가족이 없으면 식사와 외출이 불가능한 집이라면 그곳에 계속 머무는 것은 지역사회생활이 아니라 고립의 지속일 수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의 핵심은 단지 시설 밖에 사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선택하고, 특정한 주거형태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에 있다. 그래서 정책의 기준도 ‘살던 곳’에서 ‘선택한 곳’으로 확장돼야 한다. 지금 집에 계속 사는지보다 그곳을 실제로 선택했는지, 다른 주거 대안이 있는지, 선택한 장소에서 필요한 의료와 활동지원·야간지원·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가족 역시 부족한 공적 서비스의 무급 대체인력으로 전제돼서는 안 된다. 병원이나 시설이 맡던 지원을 가족에게 넘긴다면 지역사회 전환은 돌봄책임의 사회화가 아니라 장소의 이전에 불과하다. 가족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가족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 혼자 하는 자립에서, 관계를 선택하는 ‘연립의 자립’으로 자립은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능력이 아니다. 식사·이동·배변·의사소통에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활동지원인과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 지원의 목적과 시간·방법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있다. 반대로 많은 일을 혼자 수행하더라도 거주지와 서비스, 하루의 일정까지 타인이 결정한다면 실질적인 자립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러한 자립을 ‘연립(聯立)의 자립’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장애학에서 확립된 기존 용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자립생활운동의 선택과 통제, 돌봄윤리의 관계성, 관계적 자율성의 논의를 중증장애인의 삶에서 다시 묶어 보기 위한 제안이다. 연립은 단순히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관계가 평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가족이나 활동지원인에게 생존을 의존하면서도 서비스를 거부하거나 제공자를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은 상호의존이 아니라 강요된 의존에 가깝다. 연립의 조건은 필요한 지원을 선택·조정·변경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관계를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있으며, 지원을 받으면서도 삶의 최종 결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립의 목표는 의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강요된 의존을 선택 가능한 관계로 바꾸는 데 있어야 한다. 이때 보완대체의사소통(AAC), 쉬운 정보, 접근 가능한 디지털 정보, 의사소통 조력과 충분한 숙고시간은 부가 서비스가 아니다. 말이나 문자로 빠르게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당사자가 서비스 계획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자기결정권의 기반이다. 휠체어와 자세유지기기, 환경제어장치 같은 보조기기 역시 단순한 물품이 아니라 의료권·이동권·의사소통권과 사회참여권을 연결하는 권리 인프라다. 통합돌봄의 성패는 ‘권한의 이동’으로 측정해야 한다 통합돌봄의 성과지표도 달라져야 한다. 연계기관 수, 서비스 제공 건수, 입원 감소와 일상생활동작 향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사자가 제공자를 바꿀 수 있는지, 가족 외의 지원을 선택할 수 있는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지, 의사소통 지원을 받아 계획에 영향을 미쳤는지, 자신의 정보가 누구에게 어떻게 공유되는지 통제할 수 있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사회참여의 확대와 삶의 만족도도 핵심 지표가 돼야 한다. 통합돼야 하는 것은 서비스이지 당사자의 삶에 대한 통제권이 아니다. 제도의 성패는 기관 사이의 연결이 촘촘해졌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와 지방정부, 의료기관과 복지기관, 전문가와 가족에게 집중돼 있던 결정 권한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이동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잘 돌봐주는 제도’가 아니다. 충분한 의료와 돌봄을 안정적으로 지원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필요한 관계를 구성하며, 원하지 않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다. 통합돌봄이 그러한 권한의 이동을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의존하면서도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지 않는 ‘연립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