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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의 장애운동, 그 한계와 돌파구

선변
뎃글수 0 조회수 13 작성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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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운동은 한국 사회 복지 인권의 진전을 이끌어온 주요한 사회운동이다.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완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은 수많은 장애인과 활동가들의 오랜 투쟁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중앙 차원의 성과와 달리, 지역 현장에서의 장애운동은 여전히 취약하고 고립되어 있다. 지역 기반의 장애인단체들은 재정적 어려움, 인력 부족, 행정 의존, 그리고 지역사회로부터의 무관심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의 장애운동은 여전히 ‘생존’의 언어로 설명된다.

행정 위탁에 갇힌 운동의 현실

지역의 장애인단체들은 대부분 지자체의 보조금과 위탁사업에 의존한다. 활동보조서비스 제공기관,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센터, 장애인복지관 등은 모두 행정의 위탁 구조 속에서 운영된다. 이 구조는 복지의 전달체계로서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약화시킨다.

운동은 본질적으로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다. 그러나 재정의 대부분을 지방정부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지자체의 정책이나 행정시스템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예산 심의의 칼날 앞에서 단체는 언제든 지원 중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단체의 방향은 ‘운동’보다는 ‘사업 수행’으로 기울고, 장애인의 권리보다는 행정의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활동가의 절대 수가 적고, 새로운 세대의 참여가 부족하며, 단체 간 연대도 제한적이다. 이들은 중앙의 장애운동이 제기하는 정책 의제에 공감하면서도, 지역 현실에서는 그 의제를 실현할 힘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탈시설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지역에는 장애인이 머물 대안주거 시설도, 이를 지원할 인력도 부족하다. 결국 ‘서울의 이야기’로만 남는 경우가 많다.

복지와 인권의 경계에서 길을 잃다

지역에서의 장애운동은 자주 복지와 인권의 경계에서 흔들린다. 복지는 행정이 요구하는 틀이고, 인권은 그 틀을 넘어서는 주체적 실천이다. 그러나 지역단체들은 복지사업 수행에 매달리느라, 인권운동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놓여 있다.

복지관, 자립생활센터, 상담소, 활동지원기관 등은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권리 옹호’라는 공통된 가치 아래에서의 연대는 부족하다. 행정은 단체를 ‘서비스 제공자’로 구분하고, 서로 경쟁하게 만든다. 그 사이 장애인 당사자의 삶은 조각난 채 남는다. 한쪽에서는 돌봄과 지원을, 다른 한쪽에서는 자립과 권리를 말하지만, 그 사이를 잇는 구조는 부재하다.

또한 지역의 장애인운동은 여성, 발달장애인, 중증장애인 등 세부 집단의 권리를 교차적으로 논의할 여력이 부족하다. 여성장애인의 성폭력 문제,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권 보장, 활동지원의 사각지대 등은 여전히 ‘특수한 문제’로 취급된다. 결국 장애운동의 내부에서도 소수의 목소리가 주변화된다.

인력과 세대의 단절, ‘운동의 지속성’ 위기

운동의 지속성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지역의 장애인단체는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상근활동가가 부족하고, 급여 수준은 낮으며, 업무는 과중하다.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지원 체계도 미흡하다.

특히 지역의 젊은 세대는 장애운동에 대한 인식이나 접근 기회가 거의 없다. 대학이나 청년 단체와의 연결망이 약해, 새로운 세대가 유입되지 않는다. 오래된 활동가들은 지치고, 새로 들어올 사람은 없다. 그 결과 ‘운동의 세대교체’는 멈춰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인력 부족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운동의 기억’이 단절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과거의 투쟁과 성과가 기록되지 않고, 새로 온 활동가는 처음부터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중앙단체가 중심이 된 장애인운동사는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지만, 지역의 운동사는 여전히 미발굴 상태다.

지역사회의 벽 — ‘불편한 존재’로 남은 장애인

지역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복지의 수혜자’로만 본다. 장애인권이나 정치적 참여를 이야기하면 “왜 굳이 그런 말을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공공기관의 접근성, 지역 축제나 회의의 참여 보장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협의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지역적 문화는 장애운동의 외로움을 더욱 깊게 만든다. 중앙의 큰 시위나 연대 행동에는 언론의 관심이 따라붙지만, 지역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은 조용히 묻힌다.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면 ‘괜히 시끄럽게 한다’는 시선을 받는다. 지역의 좁은 인간관계망 속에서 행정, 기관, 단체, 언론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 장애운동은 ‘싸우면 고립되고, 침묵하면 생존하는’ 딜레마에 갇힌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장애인의 권리 의식은 점차 약화되고, ‘운동’이 아니라 ‘사업 수행’과 ‘복지 이용’만 남는다.

돌파구는 ‘지역성’ 그 자체에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지역의 장애운동은 중앙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지역의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복지관 접근성, 활동지원 인력 부족, 지역병원 의료차별, 교통 불평등 등 구체적 현안을 중심으로 지역 내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단체 간의 경계를 허물고, ‘지역 장애인권 네트워크’와 같은 느슨한 연대를 통해 공동의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단체, 노동조합, 청년단체, 이주민단체 등과의 교차 연대도 중요하다. 장애의 문제는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지역의 역사를 남기는 일이 절실하다. 운동은 언제나 기억에서 자란다. 기록이 있어야 세대가 이어지고, 실패도 교훈이 된다. 작은 지역의 단체라도, 자신의 활동을 꾸준히 기록하고 공유한다면 그것이 바로 운동의 씨앗이 된다.

운동은 다시, 일상으로부터

지역에서의 장애운동은 거대 담론보다 더 섬세한 싸움이다. 접근성 없는 복지관의 문턱, 무심한 행정의 태도, 이해 부족한 주민의 시선 속에서 매일같이 이어지는 작은 실천들이 쌓여야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운동’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역의 현실 속에서는 하루하루의 권리 지키기가 곧 운동이다. 중앙에서의 정책투쟁이 제도적 변화를 이끌었다면, 지역의 운동은 그 변화를 삶 속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지역의 장애운동은 여전히 부족하고, 외롭고, 느리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현장에서 싸우고 있다. 행정의 언어에 갇히지 않고, 복지의 틀을 넘어,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야말로 진짜 운동의 시작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