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공통된 걱정은 단 하나다.  “내가 죽은 뒤에도 우리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부모들은 조금이라도 더 재산을 남겨주려 한다. 집 한 채라도, 생활비라도 마련해 놓으면 자녀의 미래가 안전할 것이라 믿지만, 재산만 남기는 것으로는 온전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누가 재산을 관리하고, 지출관리는 누가 어떻게 할지, 살던 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의료와 돌봄관련 결정 등이 동반되지 않으면 재산은 오히려 새로운 위험이 되기도 한다.

상속받은 돈을 소진한 뒤 기존 복지서비스에 다시 진입하지 못하거나, 가족에게 재산관리를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금전착취의 대상이 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많은 재산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과 사람, 서비스와 관계가 통합적으로 움직이는 지원체계이다.

이를 잘 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uploaded_6a618310a02e9.png 영국의 Mencap 홈페이지 첫 화면. ©김영아

영국은 ‘재산을 남기는 일’을 ‘삶을 설계하는 일’로 연결하는데 그 중심에는 ‘유산기부’ 라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흔히들 영국을 유산기부 선진국이라 말하는데 유언과 신탁제도, 공익법인 체계, 상속세 감면제도가 서로 연결되어 유산기부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구조가 갖춰져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자선단체에 남긴 유산을 상속세 과세 대상 재산에서 공제한다. 특히 순유산의 10%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상속세율이 40%에서 36%로 낮아진다. 이른바 ‘Legacy 10’ 제도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관점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세금 감면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유언과 신탁을 활용해 발달장애인 자녀에게 필요한 자원을 먼저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자녀가 사망한 뒤 남은 재산을 장애인 지원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발달장애인 지원단체인 멘캡(Mencap)이다.

멘캡은 부모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유언장과 신탁, 부모 사후의 재정계획을 안내하는 ‘Wills and Trusts Service’를 운영한다. 부모는 유언을 통해 발달장애인 자녀를 위한 장애인신탁이나 재량신탁을 설정하고, 신탁관리자는 자녀에게 필요한 주거·생활·여가·지원비를 당사자의 삶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 

자녀의 삶이 끝난 뒤 남은 재산을 멘캡과 같은 공익단체에 기부하도록 지정할 수도 있다. 한 가족의 재산이 자녀 한 사람의 생애를 지킨 후, 다른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지원하는 공공 자원으로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멘캡은 유언기부와 신탁의 최종 잔여재산 기부가 자발적 모금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이 재원이 다시 부모 대상 미래설계 교육과 유언·신탁 상담에 활용된다고 설명한다. 

이 사례에서 유산기부는 자녀에게 돌아갈 재산을 줄이는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동한다.

먼저 발달장애인 자녀의 평생생활을 보장하고, 남은 재산이 다른 발달장애인의 삶을 지원하도록 연결한다. 개인의 유산이 가족의 안전망이 되고, 다시 사회의 안전망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부모 사별은 재산의 이전만으로 준비할 수 없다. 발달장애인에게 부모의 죽음은 보호자 한 사람을 잃는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함께 살던 집, 일상의 규칙, 병원에 동행해 주던 사람, 돈을 관리해 주던 사람, 자신의 의사를 알아듣고 설명해 주던 사람을 한꺼번에 잃는 사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부모가 준비해야 할 유산에는 돈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정보와 관계도 포함되어야 한다.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어떤 지원자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몸이 아플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일상에서 꼭 유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누구와 계속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지, 임종과 장례는 어떻게 준비하고 싶은지 등이다.

영국 멘캡의 사례가 의미 있는 이유도 유언과 신탁을 발달장애인의 미래생활을 계획하는 과정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쉬운 정보 형태로 유언과 신탁을 설명하고, 부모와 보호자가 전문 법률가를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신탁회사는 가족과 당사자를 알아가며 그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에 맞춰 자금을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자녀에게 얼마를 남겨줄 것인가가 아닌, 남겨진 재산이 누구의 판단에 따라 어떤 삶을 위해 사용되게 할 것인가 이다. 

한국형 유산기부법에 대한 기대 

우리나라에서도 2026년 상속재산의 10% 이상을 공익목적으로 기부할 경우 상속세 산출세액의 10%를 공제하는 이른바 ‘한국형 Legacy 10’ 법안이 발의되었다. 다만 2026년 7월 현재 법안은 입법 절차 진행중이며, 아직 시행에 접어들지는 않았다. 법이 통과된다면 유산기부에 대한 관심과 공익재원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데, 발달장애인의 노후와 부모 사후를 생각한다면 세금 감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첫째, 발달장애인 자녀를 위한 신탁에 재산을 출연하고, 당사자 사망 후 남은 재산을 공익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이 안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유언장 작성뿐 아니라 신탁, 후견, 의사결정지원, 주거와 돌봄 계획을 한자리에서 상담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고액 자산가만이 아니라 집 한 채나 소액이라도 의미 있게 남기려는 시민들을 위해 낮은 진입장벽이 필요하다.  

넷째, 기부받은 단체가 발달장애인의 노후와 사별, 죽음준비를 위한 장기적인 공익기금이나 지역사회 지원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투명한 관리기준이 요구된다. 

다섯째, 발달장애인이 단지 유산의 수혜자로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재산과 유품, 장례와 기부에 관한 뜻을 직접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쉬운 정보와 의사결정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좋은 유산기부제도는 죽은 뒤의 재산만을 다루지 않는다. 부모가 남긴 재산이 자녀를 잠시 먹여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녀가 원하는 삶을 오래도록 지켜주는 체계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한 가족의 사랑이 또 다른 발달장애인의 노후와 죽음을 지키는 사회적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