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loaded_6a261eba54828.jpg 뉴욕 ‘Mount Sinai Beth Israel Comprehensive Behavioral Health Center’ 사례. ©국가인권위원회

【에이블뉴스 백민 기자】 해외에서는 자국 법령에 정신의료기관 설계·설비 기준을 마련하고 보호실 모형 및 병동 설계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국내 정신의료기관의 경우 시설기준이 병실 최소면적과 보호실 설치 개수 등 일부 항목에만 머물러 있어 환자의 인권과 안전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병실·보호실·공용공간에 대한 인권 친화적 시설 모형과 정신의료기관 맞춤형 시설기준 모델이 제시됐다. 또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과 인증평가 기준 개선, 시설환경 개선을 위한 중장기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최근 ‘정신의료기관의 인권친화적 치료 시설 환경 구현을 위한 모델 개발 실태조사’(연구책임자 전남대학교병원 김성완)를 발간했다.

“해외는 설계·설비 지침 운영”‥국내도 인권·안전 기준 정비 필요

정신의료기관은 입원 환자의 자율성과 안전, 치료 효과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특수성을 지닌다. 하지만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은 병실 최소면적과 보호실 설치 개수 등 일부 기준 외에는 구체적인 시설기준이 부족해 현장에서는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형태로 운영되는 사례가 있다.

실제로 최근 정신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사망사건은 병동 구조와 보호실 설비가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관리 감독의 부재와 제도적 공백을 드러냈다. 또한 시야 확보가 어려운 구조, 부적절한 재질, 위생 설비 미비 등은 치료 환경으로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영국, 호주, 일본 등 국가들이 자국 법령에 정신의료기관 설계·설비 기준을 마련하고 보호실 모형 및 병동 설계 지침을 제시하는 등 정부 차원의 개선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준은 자해·자살 예방뿐 아니라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장과 의료진의 업무 효율성까지 고려해 치료 성과와 인권 보호를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이에 이번 연구는 국내 정신의료기관의 병실·보호실·공용공간 등 시설환경과 운영 실태를 종합적으로 조사해 환자의 인권 보장과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고 인권·안전 관점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uploaded_6a261eba7caed.jpg 국내 의료환경의 변화와 의료기관의 병상당 연면적 변화 사례(종합병원). ©국가인권위원회

인구 과밀한 병상 구조·인권 기준 반영 못 한 설비 등 문제점

일본·대만을 비롯한 해외 국가들은 개인 공간 확대, 자연채광 및 야외공간 확보, 자해 방지 설계, 격리·강박 최소화를 위한 법·제도와 설계 기준을 통해 병동 환경을 친화적·개방적 구조로 전환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정신의료기관은 종합병원 정신과, 정신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등 유형별로 인력투입, 환자구성, 시설 환경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종합병원은 높은 병상수환율과 짧은 재원 기간을 보이고 정신병원과 의원급 입원실은 낮은 순환율과 긴 재원 기간을 보였다.

또한 시설 환경은 전반적으로 고밀도·저면적·다인실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호실은 면적·설비·환경 기준의 일관성이 부족하며 인권·회복 중심 환경과는 거리가 있고, 병동 형태는 중복도형 중심으로, 자연 접근성·채광·환기 등 치유 환경이 제한적이다.

물리적 환경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 조사 결과, 정신병원 시설 및 환경에 대한 유형별 가이드라인 및 기준 부재로 각 병원의 재정능력과 운영철학에 따라 시설 환경의 질적 편차가 매우 컸다. 아울러 안전을 위한 통제와 환자의 인권·존엄성 사이에서 상충하는 지점들이 확인됐다.

종합적으로 국내 정신의료기관은 병상당 면적이 낮고 5·6인실 위주의 과밀한 병실 구성, 노후화된 병동 구조와 관찰 사각지대, 위생·감염관리 취약 구조, 사생활 보호와 인권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보호실 설비 등 인권과 안전을 동시에 저해하는 물리적·운영상 한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실·보호실·공용공간 개선안 및 기능별 맞춤형 정신의료기관 모델’ 제시

연구는 도면 분석과 현장조사, 해외사례 비교를 종합해 병실·공용공간 중심의 인권친화적 시설모형(안)과 보호실 시설 모형, 구조물 안전장치 및 기술적 설계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급성기 병동·정신재활·중독·노인(치매)·의원급 등 기능 및 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시설기준(안)을 도출했다.

보고서는 “병실·공용공간 중심의 시설 모형은 환자가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보장하고 환경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지 않도록 물리적 기본권 보장을 비롯해 신체적 안전, 환자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개인의 자율성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심리사회적 안전, 편안하고 비위협적인 치료적 환경 조성 등을 원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합병원 및 국공립정신병원은 안전·관찰·모니터링·감염관리 등 고난도 기능을 중심으로 한 급성기 집중치료병동·응급 대응 모델, 정신병원은 치유환경 강화, 병동 내 역할 구분, 정신병원 전체의 기능 세분화, 환자군 특성에 맞는 환경 기준 마련을 핵심으로 하는 모델,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안정기·아급성기 환자의 입원치료와 재활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다기능 모델 등 유형별 맞춤형 시설기준을 제안한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이외에도 정책적으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시설기준 개정, 정신의료기관 인증평가 기준에 따른 인권친화적 시설 환경 반영, 시설개선을 위한 예산 추계 및 지원체계를 비롯해 10·20년 단위 단계별 지원 시나리오, 병상 규모·종별 차등을 반영한 중장기 마스터플랜 수립 등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