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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교통사고, 장애인은 더 안전하게 다녀야 할까

임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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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교통사고, 장애인은 더 안전하게 다녀야 할까

나의 장애와 만난 사고 후유장해, 그 모호한 경계선

 

고요한 밤 찾아온 교통사고

지난 9월 15일 밤. 집 근처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달려오던 자동차와 나는 서로 보지 못했다. 타고 있던 전동휠체어 측면을 부딪혀 휠체어는 박살 났고 내 몸은 휠체어에서 벗어나 수 미터를 날았다. 사고 순간, 그리고 주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골형성부전증(뼈가 약하게 자라 쉽게 골절되는 희귀 질환)을 갖고 태어난 선천성 중증장애인이다. 교통사고도 처음이지만 뼈가 쉽게 골절되는 장애인지라 교통사고는 최악의 사건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교통사고 당일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두개골, 경비골, 갈비뼈, 어깨 등 다수의 골절과 흉터로 온몸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 와중에도 구입한 지 몇 달 안 된 전동휠체어가 신경 쓰였다. 휠체어도 몸처럼 생각했는데. 나와 헤어진 상태에서 외부인과 격리되었다.

의식이 제대로 돌아왔을 때 중환자실임을 인지했다. 좌우 환자 모두 의식이 없는 것 같다. 기계소리도 들리고 간혹 주변 보호자들이 '눈 좀 떠봐, 우리 집에 가자'라는 흐느끼는 말도 들렸다. 순간 두려움과 동시에 내가 왜 여기에 있는데 기억을 더듬었다. 온몸이 망가진 것만 같아 두려웠다.

마침 간호사가 눈을 뜬 나를 발견하고는 두개골 골절에 따른 출혈로 중환자실에 왔다고 설명해주는데 그때서야 머리가 아파왔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공간 속에서 내 의식이 돌아왔다는 감사함과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뼈도 약한 놈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필자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병실의 모습, 휠체어가 있어도 제한된 일상,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 ©최충일 필자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병실의 모습, 휠체어가 있어도 제한된 일상,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 ©최충일

<장애 때문에 안전을 강요하는 사람들>

골절된 다리가 가장 심각하여 다니던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겼다. 수술 후 입원하는 동안 운전자 측 보험회사와 경찰서 도로교통과에서 전화가 왔다. 보험회사에서는 친절하게 나의 안부를 물어보고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며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갑자기 질문을 했다.

"보통 휠체어 탄 장애인들은 야간에 안전을 위해 라이트나 야광 스티커를 설치하고 다니던데... 환자분께서는 그런 조치를 하고 다니셨나요?"

순간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교통사고도 처음이지만 보험사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되물었다.

"아니요. 그러면 비장애인은 야간에 옷에 라이트나 야광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나요? 말씀이 좀 이해가 안 가서요"

보험사는 몇 초 간 침묵 후 "그건 아니지만 장애가 있으신지라 평소에 어떻게 다니셨는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고요. 필요한 부분 있으시면 이 번호로 다시 전화 주세요"

몸도 아프지만 기분이 상했다. 내가 왜 저런 말을 들어야 하지.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 한 것도 아닌데 야간에 안전하게 다니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평소 티비에서 보던 교통사고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갈등이나 분쟁 등을 본 기억이 났지만 나는 뭔가 달랐다.

왜 장애가 있어서 안전을 더 강요하는 것일까? 나는 괘씸한 마음에 통화상으로 기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같은 질문을 다시 해당 보험사 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의 장애와 사고 후유장애

12월 현재 나는 가까스로 2번의 수술과 치료 후 퇴원했다. 그리고 합의를 위해 손해사정사와 상담하고 싶어 집으로 초대했다. 합의라는 절차와 관계. 뭔가 얽히고 싶지도 않고 피하고 싶었지만 아픈 몸과 앞으로 회복해야 할 몸을 위한 나의 노력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회복할 때까지 휴직이 불가피했다.

"진단서 적힌 질병코드가 Q로 시작하시네요. 이건 희귀 질환인 경우에 붙는데요.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후유장해 항목 중에 노동력 상실수익액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사고 이전에도 존재한 장애로 인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기 때문에 좀 금액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있어요. 교통사고 이전에도 걷지 못했었기 때문에 노동력 상실로 보기 어렵다는 거예요."

나는 손해사정사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제가 걸을 수 있고 없고의 기준이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휠체어를 타고 일을 해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급여를 받고 있는데..그리고 말씀하신 노동력의 관점을 골절된 다리만을 보고 결정할 수 있나요? 저는 사고 전에는 집에서 기어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혼자 일상생활이 가능했고 출근할 때는 다리에 힘을 써서 혼자 휠체어에 오르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일할 수 있었구요. 화장실 가거나 상급자에게 결재 상신할 때는 클러치로 걸을 수도 있었는데. 노동력 상실의 기준을 어디서 잡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듣고 있던 손해사정사는 골절 부위가 관절이냐 아니냐도 차이가 크고 관련 보험법이 그렇다는 라는 냉정한 말투로 나를 응시하며 설득하듯이 애썼다.

상실과 회복을 위한 고민

나의 노동력을 온전한 직립보행이 가능한 다리의 기능으로만 봐야지 성립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뿐만 아니라 등록장애인 중 하지나 상지기능, 척추 등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사고 전과 사고 후의 노동력 상실을 판단한 근거가 너무나 애매하게 들렸다. 그래서인지 그 말 이후로 손해사정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대화가 끝난 후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신호로 화장실을 가기 위해 깁스한 다리를 끌며 조금씩 기어갔다. 화장실까지 가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사고 전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안전 가능한 범위였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보다 하지기능이 부족해도 그것을 상실로 봐야 하는지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단지 합의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의 노동력, 일상생활 능력을 비장애 중심 보험사 관점에서 이를 증명하는 것이 꽤나 무기력한 싸움처럼 느껴졌지만 쉽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노동력은 교통사고 이전에도 존재 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나의 몸은 아프다. 이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교통사고가 기능의 상실이 아닌 일상의 상실로 인정받고 싶다. 2022년의 절반을 그렇게 원치않게 채워버렸지만 2023년은 그 일상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