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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속 뇌전증 장애인

임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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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속 뇌전증 장애인

 

SBS 금토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극본 민지은, 연출 신경수)는 ‘재난, 사고, 범죄 발생 시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 범인 잡는 경찰과 화재 잡는 소방의 공동 대응 현장일지’다.

불이 나고 사건이 발생하고, 그 소방서와 경찰서에서는 날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태원 경찰서에는 진호개(김래원 분)와 공명필(강기둥 분)이 있고, 태원 소방서에는 소방관 봉도진(손호준 분)과 구급팀 송설(공승연 분)이 있다.

소방서 옆 경찰서. ⓒSBS 소방서 옆 경찰서. ⓒSBS

구급팀 송설이 진호개에게 태원 경찰서에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부산으로 휴가를 가서 지하철에서 깜빡 졸았는데 눈을 떠 보니 부산진역과 범일동역 사이더라고 했다.

부산지하철 1호선에 부산진역과 범일동역 중간에 좌천역이 있다. 진호개는 좌천되었다는 농담을 한 모양이지만, 실제로 좌천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뭉개는 언사 같다.

부산 좌천동은 법정동이자 행정동인데 한자로는 좌천동(佐川洞)이라고 쓴다. 그리고 진호개가 말하는 좌천 당했다는 의미는 왼쪽으로 옮겼다는 좌천(左遷)을 쓴다. 예전부터 오른쪽을 중시하는 관습에서 낮아지는 것을 왼쪽으로 옮긴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진호개가 좌천을 당한 것이 아니라 범인이 태원 지역에 있어서 범인을 잡기 위해 자원한 것이다. 유력한 대선후보 당 대표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포악한 금수저 마태화(이도엽 분)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진호개는 마태화를 잡으러 왔던 것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 좌천역. ⓒ이복남 부산지하철 1호선 좌천역. ⓒ이복남

마태화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이유는 석미정 살인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마태화는 마약을 사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댔다. 물론 그 알리바이는 조작된 것이지만.

그런데 실제로 그 시각에 마약을 산 사람은 최석두(정욱진 분)였는데 최석두의 옷과 모자 등에 마태화의 지문을 묻혀 놨다. 최석두의 알리바이와 동영상을 마태화에게 제공해준 사람은 진호개의 아버지이자 검사인 진철중(조승연 분)이다.

진호개는 마태화의 알리바이를 깨려고 최석두가 범죄의 하수인에게 가담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같이 범죄에 가담했다. 범죄를 지시하는 대장은 진호개에게 최석두와 같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 오라고 시켰다.

최석두가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다가 발작했다. 최석두는 쓰러져서 게거품을 물었다. 마침 그 마트에 송설이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뭔가를 하려는데 최석두는 벌떡 일어나서 그대로 가버렸다.

마트에서 발작하는 최석두. ⓒSBS 마트에서 발작하는 최석두. ⓒSBS

다른 드라마에서는 경찰서 취조실에서 뇌전증으로 발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경찰이 발 빠르게 대처한다는 게 그 사람의 입에 볼펜을 물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다리 위에 올라타 짓눌렸다. 뇌전증 장애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그렇게 하면 큰일 난다고 필자에게 연락했다.

뇌전증 장애인은 경련이나 발작이 뇌전증의 한 증상이다. 그럴 때는 그냥 발작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고 주위에 위험물이 없는지 살펴보고 가능하면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주면 된다. 입에 볼펜을 물리는 행위는 까딱하면 볼펜을 깨물 수가 있으므로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고 손발을 억지로 묶어 두면 안 된다고 한다.

언젠가 뇌전증 장애인이 길을 가다가 발작해서 행인들이 119를 부른 모양이다.

“나중에 가슴이 하도 답답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119구급대원이 와서 심폐소생술을 한 모양입니다.”

필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소방관 교육에 뇌전증에 관한 교육이 있느냐고 소방본부에 문의했더니 그런 교육은 없다고 했다고. 다음 교육에 고려는 해 보겠다고.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 ⓒSBS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 ⓒSBS

필자도 ‘소방서 옆 경찰서’ 드라마를 보고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혹시나 뇌전증 장애인이 그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까 싶어서다.

물론 사람마다 그 양상이 제각각이기는 하지만 대발작을 했다가 그렇게 금방 멀쩡하게 일어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글을 쓴 사람은 그 드라마에 굳이 뇌전증 장애인을 왜 등장시켰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쓴 사람은 앞의 장면만 본 것 같은데 뒷부분은 더 기가 막혀서 어안이 벙벙하다.

아무튼 진호개는 최석두를 잡기 위해 송설을 찾아갔다.

진호개 : “저번에 마트에서 봤던 사람 있지? 그 정도 뇌전증이 약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되지?”

송 설 : “발작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약을 안 먹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서 더 약을 찾게 될 겁니다.”

대부분의 뇌전증 장애인은 약을 먹는다. 그러나 뇌전증 발작을 예방하는 약은 없다. 수술을 해도 마찬가지다.

진호개는 공명필과 함께 근처 약국을 수소문했다. 한 약국에서 한 달 치 약을 사 갔다고 했다. 약사가, 잠깐만요, 좀 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뇌전증에 대해서 문의하는 진호개. ⓒSBS 뇌전증에 대해서 문의하는 진호개. ⓒSBS

마태화가 사채업자를 통해서 최석두를 죽이라고 살인 교사를 한 모양이다. 최석두는 마약사범이니까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일 셈이었다. 진호개와 공명필이 근처 모텔을 샅샅이 뒤져서 최석두를 겨우 찾기는 찾았는데 최석두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진호개가 119를 부르고 119차 안에서도 CPR(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여 포기하고 앉았는데 최석두가 캑캑 기침을 하더니 깨어났다.

최석두는 병원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고 구속되었다. 마태화라는 동영상을 최석두에게 보여 주었다. 진호개가 최석두에게 그때 우리가 안 갔으면 너는 시린지펌프로 죽어가고 있었다고 하자 최석두가 실토를 했다. 저기에 나오는 사람은 제가 맞는데요. 마태화는 니(최석두)가 아니라 자기라고 큰소리쳤다. 최석두는 나를 나라고 하는 데 아니라고 한다면 저는 뭐라고 해야 하느냐고 난감해했다. 그래도 마태화는 그 동영상이 자기라고 막막 우겼다. 그 동영상에서는 마태화의 유전자가 나왔던 것이다.

진호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긴급체포는 48시간 내 체포영장을 받아야 하는데 마태화를 체포한 지 48시간이 다 돼가고 있는데 마태화를 구속할 이렇다 할 명분이 없었다.

진호개가 심문하는 최석두. ⓒSBS 진호개가 심문하는 최석두. ⓒSBS

진호개가 최석두의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자 송설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최석두와 마태화의 걸음걸이가 다른 것 같으니 행동 분석으로 법보행을 해 보자는 것이다.

마태화의 양치영(조희봉 분) 변호사는 거절해도 된다고 했으나, 진호개가 당신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며 약을 올렸다. 그러자 마태화는 까짓것 해 보겠다며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마태화는 전신에 행동 분석 장치를 설치한 특수한 옷을 입고 걷고 뛰고 달렸다.

이번에는 최석두에게도 똑같은 실험을 했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체격이나 모습은 비슷했고 유전자도 마태화의 것이 나왔으나 걸음걸이 즉 법보행은 완전 달랐다. 최석두는 이른바 안짱다리였다.

안짱다리인 사람들은 발자국 모양이 11자로 나란히 남지 않고 발끝이 뒤꿈치보다 안쪽으로 모인 모양으로 남는다. 거기에 비해서 마태화는 안짱다리가 아니었다.

드디어 마태화는 석미정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마태화는 자기가 안 그랬다고 극구 부인하다가 몸부림쳤다. 마태화 너는 이제 구속이야.

법보행을 준비하는 마태화. ⓒSBS 법보행을 준비하는 마태화. ⓒSBS

필자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것은 드라마일 뿐이지만,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난감했다. 최석두는 뇌전증 장애인인데 겁이 많았고 그래서 범죄의 길에 쉽게 빠져들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석두는 뇌전증 장애인이고 마약사범이고 거기다 안짱다리였다.

차라리 안짱다리는 마태화에게 시키지, 뇌전증에다 마약사범까지 보태놨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필자가 알고 있는 뇌전증 장애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뇌전증 관련 단체에서 SBS에 항의 공문을 보냈는데 답변도 없다고 했다. 현재 뇌전증 관련 단체가 몇 개 있으나 대부분이 지원단체고 뇌전증 장애인 당사자 단체는 아직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 중에도 뇌전증인 사람이 많은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로마의 황제 시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프랑스의 나폴레옹,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철학자 소크라테스, 음악가 차이콥스키, 미술가 고흐, 발명가 노벨 등이 있다.

이처럼 뇌전증은 인구의 약 0.5~1% 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3,900만 명 정도의 뇌전증을 예상하고, 우리나라에서도 36만 명의 뇌전증 장애인이 있다고 추산된다고 한다. 현재(2021년) 우리나라에서 뇌전증으로 등록한 장애인은 남자가 3,866명이고, 여자가 3,211명으로 합계는 7,077명이다.

뇌전증이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발작이 나타나는 질병인데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뇌전증 장애인이 어떤 이유로 발작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피로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발작이 오면 본인은 그 순간의 기억은 잃어버리게 되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고의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므로 민폐를 끼친다고는 할 수 없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뇌전증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을 만나면 거품이나 타액을 삼키지 않고 흘러내리도록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기만 하고 주변에 위험한 물건만 없도록 해 주면 된다.

뇌전증 장애인에게 CPR(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입에 볼펜을 물리거나 팔다리가 떨지 않게 꽉 잡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뇌전증 장애인은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운전면허는 취득할 수가 없고, 군대도 면제 사유다. 그러나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는 운전직 공무원이나 경찰과 소방만 아니면 응시할 수가 있다.

의료용 대마가 뇌전증 장애인의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데, 이와는 별개로 ‘소방서 옆 경찰서’에서 뇌전증 장애인을 등장시켜 시청자들에게 뇌전증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 것은 고마운 일이나 뇌전증 장애인을 마약사범으로 만든 것은 정말 유감이다.

드라마에 장애인이 등장할 때는 좀 더 신중을 기하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야 없겠지만, 그 장애에 대해서는 관련 기관에 자문을 구해서 관련 장애인의 원성을 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